정금칠 객원논설위원 / 정치학박사
정금칠 객원논설위원 / 정치학박사

직업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16년 만에 전국의 254개 지역구 전역에 후보자를 냈고, 더불어민주당은 혁신공천을 내세우며 속속 후보자를 결정하고 있다. 거대양당은 이제 위성정당에 대한 전략적 운용을 통해 비례대표 의석 확보전에 나서고 있다.

여·야는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다양성·비례성·대표성 확보라는 비례대표제 가치를 무참히 짓밟고 위성정당 설립을 감행했다. 이로써 거대양당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고 정당 득표율과 의석률 간 불비례성은 더욱 심각해져 변형된 ‘파쇼정치’의 밑그림을 그려냈다. 권력 쟁취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원리는 물론 공정, 정의, 나아가 국민의 피로감 가중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식인들의 비양심적 자세를 지적한 노암 촘스키의 "권력 집단에게는 민중은 없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정치권력 엘리트들은 정책추진이나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면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가장 먼저 내세우지만, 사실 거기에 국민은 없다. 늘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었고, 공동체의 이익은 뒷전이었다. 사리사욕으로 점철되는 권력자 주변에는 늘 해바라기성 ‘정치꾼’이 곁눈질하며 또 다른 권력자로 군림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잉태되고 있다.

우리 정치의 보편화된 학습 과정이고 또 다른 정치세습의 한 현상이다. 진정한 보수를 왜곡시키는 ‘우파적 행위’, 시민사회의 의견을 대변하는 척하면서 언젠가는 권력 집단의 일부가 되려는 ‘위장 시민운동’ 역시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우리 정치의 단면이다. 그 사이 국민들은 그렇게 세뇌 되어왔고 또 그렇게 세뇌되어 가고 있다.

오는 4월 10일 22대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는 오랜 시간 계속되는 축제가 아니다. 선거기간이 끝나면 선출된 권력은 다시 현실에서 멀어진다.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속성이다. 정치 철학자 루소는 이를 두고 "국민은 오직 선거하는 동안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 다시 노예가 된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축제가 끝나고 국민의 일상이 종속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다.

국회의원은 선출직 정치인 가운데 중앙정치는 물론 지방정치에 있어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권력의 핵심 엘리트들이다. 4년 동안 국민의 대표로서 입법권을 가지며 예산을 심의하고 이를 확정하며 행정부를 견제하는 막중한 권한을 갖는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적실성 높은 입법을 위해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평가를 기초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 미래의 비전을 담아내는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힘에 바탕을 둔 강제 관계의 지배보다는 봉사와 희생을 바탕으로 조정과 타협, 그리고 협력을 통해 갈등과 대립을 풀어내는 민주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확인되는 다양성에 대한 가치를 균형 있게 조망하고 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자칭 민주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다양성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는 원천이자 에너지가 될 수도 있지만, 사회적 차별이나 불평등의 원인이 되면서 되레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역할에 대한 균형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과 정당조직원으로서의 역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서민들의 일상에 직결되는 입안 마련을 놓고 볼 때 그들은 정치적 판단에 골몰함으로써 정당 조직원의 역할에 더 치중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거대 야당’ 구조가 더욱 선명했던 21대 국회에서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보다는 ‘정당 조직원’의 역할이 더욱 노골화되면서 ‘행동대원’으로서의 잔영을 떠오르게 한다. 이 두 역할은 정치적 사안에 따라 상충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입법부를 구성하는 핵심 멤버라는 측면에서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우선하면서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반쪽짜리 정당 구성원이라는 지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본디 정당은 정권 창출을 통해 자유, 평등, 정의 등 정치·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가치 실현보다는 권력 획득에만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권력 카르텔’이라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재정 권한 행사에 있어서도 국회의원의 균형감각은 절실하다. 그간의 국회의원들은 예산편성과 심의 의결 권한을 행정부에 대한 견제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이나 역량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빈번하게 노출시켜 왔다. 최근에는 ‘거액의 예산을 끌어왔다’는 이른바 ‘현수막 정치’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뽐내려는 행위들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같은 국회의원의 역할 불균형은 당론 투표로 대표되고 제 식구 감싸기로 집약되는 정당 집단주의가 ‘독점과 배제의 정치’, ‘대립과 교착의 정치’로 점철되게 함으로써 국민 피로감 가중은 물론 정치의 건강성을 해치고 민주주의를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다.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주어지는 고액 연봉, 150㎡에 이르는 사무실과 차량, 운전기사, 비서관, 보좌관, 그리고 항공·철도 무료 이용 등 180여 가지 특권이 주어진다. 최고의 예우이다. ‘평범한 시민’의 겸손함, ‘금욕주의’의 검소함으로 무장된 글로벌 클린 국가 스웨덴 국회의원의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어느 후보가 다양성과 역할, 권한 행사에 있어서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피자. 그래서 옳고 그름의 전선을 만들어 제압과 배제에 길들어진 후보보다는 좀 더 낳은 것을 찾고 좀 더 바람직한 것을 추구하면서 민주적 토론을 지향하는 ‘참후보’를 선택하자.

저작권자 © 호남정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